날이 더워지면 청평사 생각이 종종 나서, 친구를 꼬셔 청평사에 다녀왔다.


예전에 당태종의 공주는 회전문을 건넜고,

애증의 상사뱀은 회전문을 건너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이들이 회전문을 지나며 여러가지를 떨쳤고,

회전문 안에서 여러가지 소원들을 빌었을 테다.


나도  회전문을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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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에서 남학생 두 명이서 들뜬 목소리로 티격태격하는 목소리가 가까워 왔다. 한 친구가 신이 난 목소리로 다른 친구에게 소리쳤다.

 "하트보내! 빈 하트라도 보내! 새꺄!!"

 나는 파프리카를 통통 썰면서 생각했다.  

 '테두리만 있는 하트를 빈 하트라고 부르는구나, 까만 하트가 빈 하트보다 좋은 거구나, 까만 하트는 닫힌 마음 같아서 더 답답하지 않을까?'

 '그래 빈하트를 보내라, 이 녀석아!'


 그리고 끓는 소면에 차가운 물을 부을 때, 어린 아이가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칭얼대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왠지 기분이 뜨끈히 좋아졌다. 

 내가 아직 거웃이 나지 않은 아이였을 적이 생각났다. 더운 여름 날, 흐드러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부엌에서는 무언가가 송송 썰리고, 보글보글 끓었다. 

 이제 조용한 집에서 내가 무언가 송송 썰고, 보글보글 끓인다. 그리고 창 밖으로 들리는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듣는다.

 

 커다란 빈 하트를 그려서 그 안에 아내와 자식들을 품어야지.

 가족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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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앞을 지나는데 우글대는 사람들 속에서 문득 나란히 앉은 노부부가 보였다.

할아버지는 까만 봉지에서 하-얀 운동화를 꺼내서 무릎 위에 올려두셨다.

그리고 볼펜을 주머니에서 꺼내시더니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무언가를 운동화에 쓰셨다.

궁금함에 슬쩍 다가가 보니, 또박또박 '金덕'이라고 양쪽 뒤꿈치에 쓰고 계셨다.

그러고는 하-얀 운동화를 할머니 손에 쥐어 주시고 무언가 조근조근 말을 이어 나갔다.

 


3년전 어느날 일기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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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의 말2014. 5. 13. 10:13







어느 작가가 말했다.

내 마음이 하늘 보는 것은, 내 몸이 바닥에 있어서 일거라고.



혼자 자취방에 숨어 잠자는 시간이 많았던 때에,

반틈 열린 창문으로 길쭉하게 뻗은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 잦았다.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냥 그 때의 시간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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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카락

나의 말2014. 5. 1. 22:16






2012년 9월 쯤 부터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최근까지 길러왔다.

집 밖을 잘 나가지 않다보니 머리가 길어졌고, 

어느 순간 이참에 머리카락 기부나 해보자는 생각에 계속 길러왔다.


원룸에 숨어 긴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니 동화속 공주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외형은 백정의 행세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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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나의 말2014. 4. 23. 18:55




 원주에서 청주를 향하던 이틀간 만났던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 날도 해가 질 무렵, 근처 초등학교를 찾아서 텐트를 쳤다. 소사 아저씨가 오셔서 수상해 보이는 저를 탐문하고 돌아가셨고, 해가 산 너머로 거의 넘어 갈 쯤 멀리서 저를 부르셨다. 그리고 소사 아저씨가 묵으시는 초등학교 옆 작은 건물에 초대되어 김치찌개를 얻어 먹고 6시 내고향을 같이 시청했다.

 

 리포터가 통통배 위에서 초장에 담궜던 생선회를 입술에 뭍혀가며 먹을 때 말씀이 없으시던 소사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내일 아침엔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 네가 꾸는 꿈도 젊은 치기도 다 그때 뿐이다. 어서 돌아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얼른 취직이나 하는게 백번 낫다!"

 

 아저씨의 말에 동의 할 수 없어서 내가 꾸는 꿈의 가치가 얼마나 높고 소중한지에 대해 무례함을 무릅쓰고 몇마디를 덧붙였다.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은 아저씨는 젊은 시절 배구선수를 지내던 자신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고 지금의 자신의 처지를 보라는 짧은 말씀을 남기시고는 입을 닫으셨다. 그래도 아저씨의 말에 동의 할 수 없었지만 남은 6시 내고향을 침묵 속에서 시청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리란 아저씨의 호의를 몇 번 사양한 뒤에 텐트에 돌아와 눈을 붙였다.

 

 다음날 새벽, 잠 잤던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날도 역시 해는 머리 위에 올랐다가 점점 산을 넘으려 했다.

  작은 동네의 입구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우체국 옆에서 소녀시대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학교가 어디 있는지를 물어보고, 합창단의 돌림노래 같은 대답을 간신히 해석해서, 근처 초등학교를 찾아 텐트를 폈다. 짐을 풀고 숨좀 돌리려니 언제부터 따라왔는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재잘댔다.

 

 "아저씨 가출 했어요?"

 "아니~"

 "그럼 거지에요?"

 "아니야."

 

 위의 대화를 시작으로 아이들은 온갖 쓸데 없는것들을 궁금해 했고 금세 날은 어둑해졌다. 부모님이 걱정하신다고 애들을 돌려보내고 저녁으로 빵과 우유를 먹으며 지도책을 보는데 무리중에 가장 작고 조용하던 아이 하나가 남아서 주변을 맴돌고 있는게 보였다. 걱정이 되어 아이를 불렀다. 그리고 아이가 쭈뼛쭈뼛 오더니 나에게 말했다.

 

 "저는 아저씨처럼 모험가가 되는게 꿈이에요."

 "나는 그런게 아니..."

 "저도 아저씨처럼 내일 아침부터 모험을 떠날거에요! "

 

 머릿속에 아이가 실종되고, 경찰들이 탐문을 시작하고, 내가 검거되는 모습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급히 아이에게 말했다.

 

 "너는 아직 너무 작아서 모험은 힘들어. 공부 열심히 하고, 나중에 대학에 가서 그 때 모험도 가고 그래라. 이거 빵 하나 줄테니까 집에 가서 먹어."

 

 아이는 조용히 집에 돌아갔고, 나는 조용히 지도를 보며 길을 확인하고 눈을 붙였다.

 

 다음날, 일어나 길을 걷는데 지난 이틀 간 만난 두 사람이 계속 생각났다. 소사 아저씨를 만난 나는 모험가가 꿈인 초등학생이었고, 초등학생을 만난 나는 현실적인 소사 아저씨였다.

 

 그리고 모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내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의 순간들이 오면 두 사람이 생각난다. 한쪽엔 초등학생이 서 있고, 다른 쪽엔 소사 아저씨가 서 있었다. 만약 그 둘을 다시 만날 날이 온다면 어떨지 생각한다. 소사 아저씨에게 더 이상 허무맹랑해 보이는 애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험가가 꿈인 초등학생에겐 그 꿈을 응원한다고 힘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둘 모두에게 웃음을 받는 모습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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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

나의 말2013. 11. 13. 22:01

 

 

 

술을 먹고 걸었다.

뛰지도 않고 걸었는데 넘어져서 무릎이 다 까졌다.

무릎의 딱지는 성가시게 잘 아물지도 않았고, 움직일 때마다 존재감을 참 잘 나타냈다.

일주일 넘게 신경쓰던 딱지가 변기에 앉는 순간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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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

나의 말2013. 7. 27. 14:16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가까웠다. 길 하나 건너서 주유소 하나만 돌면 학교였다. 정문에 들어서기 전에 옷매무새를 고쳤고, 정문에 들어서며 맞은 편 큰 돌덩어리를 바라보며 경례를 했다. 正道. 매일 외쳤다. 학생들은 바른 길을 갈 것을 앵무새처럼 외쳤고 종이 치기전에 옹기종기 학급에 모여 앉았다. 해가 지고도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다. 자정이 가까워질 쯤 어둑한 학교를 빠져나와 주유소를 돌고 길 하나를 건너 집에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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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나의 말2013. 7. 10. 13:35

몇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볼까 하고 꺼내들었다.

찬찬히 읽다가 한 단어에서 눈이 멈췄다. 영어.

영어라는 단어가 익숙치는 않지만 문맥상 충분히 이해할만 했다.

그러나 괄호 안의 한자어 '囹圄'가 시선을 꽉 붙잡았다.

 

갇혀있는 단어에서는 온갖 외로움이 서려있는 듯 했다.

영어라니.. 영어라니..

가슴안에 큰 돌을 괴어두는 기분이다.

 

사실 예전에 한번 단어에서 감정을 느껴본적이 있긴 하다.

티비에 나오는 아이유를 보다가 들뜬 마음에 글씨로 '아이유'를 썼는데,

그 글자만 봐도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허허 조금 부끄러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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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나의 말2013. 6. 11. 16:20

 

오랜만에 중고 책이 아닌 새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했다.

포장을 열고 책을 후루룩 넘기는데 새 책 냄새가 난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적 생각이 나고 가슴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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