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

나의 말2013. 7. 27. 14:16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가까웠다. 길 하나 건너서 주유소 하나만 돌면 학교였다. 정문에 들어서기 전에 옷매무새를 고쳤고, 정문에 들어서며 맞은 편 큰 돌덩어리를 바라보며 경례를 했다. 正道. 매일 외쳤다. 학생들은 바른 길을 갈 것을 앵무새처럼 외쳤고 종이 치기전에 옹기종기 학급에 모여 앉았다. 해가 지고도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다. 자정이 가까워질 쯤 어둑한 학교를 빠져나와 주유소를 돌고 길 하나를 건너 집에와 잠에 들었다.






'나의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사람  (0) 2014.04.23
딱지  (0) 2013.11.13
단어  (0) 2013.07.10
새 책  (0) 2013.06.11
몸빼바지  (0) 2013.05.08

단어

나의 말2013. 7. 10. 13:35

몇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볼까 하고 꺼내들었다.

찬찬히 읽다가 한 단어에서 눈이 멈췄다. 영어.

영어라는 단어가 익숙치는 않지만 문맥상 충분히 이해할만 했다.

그러나 괄호 안의 한자어 '囹圄'가 시선을 꽉 붙잡았다.

 

갇혀있는 단어에서는 온갖 외로움이 서려있는 듯 했다.

영어라니.. 영어라니..

가슴안에 큰 돌을 괴어두는 기분이다.

 

사실 예전에 한번 단어에서 감정을 느껴본적이 있긴 하다.

티비에 나오는 아이유를 보다가 들뜬 마음에 글씨로 '아이유'를 썼는데,

그 글자만 봐도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허허 조금 부끄러운 기억.

 

 

 

 

'나의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딱지  (0) 2013.11.13
정도  (0) 2013.07.27
새 책  (0) 2013.06.11
몸빼바지  (0) 2013.05.08
낮 잠  (0) 2013.05.08

카테고리 없음2013. 7. 8. 11:11

 

 

 

어느날 집에 돌아왔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어 안방에 가보았다.

침대 위에는 여러 음식들이 똑같이 짝을 지어 줄을 내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엄마는 바람이 나서 당분간 집에 들어오지 않을 듯 했다.

엄마는 가족을 사랑하지만 새로운 그 남자 역시 사랑한다고 했다.

가족을 사랑하며 새로 찾아온 사람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하며 또한 멋진 글귀를을사랑하는,
지난 추억을 사랑하며 다가올 부푼 꿈을 사랑하는,
학교 앞의 가느다란 병아리를 사랑하며 치맥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또한 나를 사랑하는,

사랑은 뭔가 생각보다 복잡하구나..

 

갓 잠에서 깬 몽롱한 머리 속에 온갖 사랑들이 부유했다.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황지우 '거룩한 식사'

 

 

 

 

'잡동사니 > 어떤 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향성  (0) 2014.05.04
지금 당장 팔로우해야 할 인스타그램 사진가 27  (0) 2014.04.17
  (0) 2013.08.12
개복치  (0) 2013.06.30
  (0) 2013.04.23

 

 

 

 

'잡동사니 > 어떤 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향성  (0) 2014.05.04
지금 당장 팔로우해야 할 인스타그램 사진가 27  (0) 2014.04.17
  (0) 2013.08.12
거룩한 식사  (0) 2013.07.06
  (0) 2013.04.23